[주간영감] 2023 1/3 밥
이번 주 영감은 ‘밥’
오랜만에 가족들과 만나는 구정이 끼어있던 주간이라 그랬는지 평소에 생각 없이 먹던 ‘밥’이 영감으로 다가왔다.
대단할 거 없는 식사자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왜 그렇게 대단하게 느껴지던지. 먹는 ‘식사’ 자체의 행위에 대한 것과 같이 밥을 나누는 ‘식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흔하디 흔한 모습이지만 동시에 최고의 것’이라고 표현한 한 시인의 시가 떠오르며 밥을 소재로 한 시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그중 마음에 들어온 것들을 몇 점 공유해 본다.
<밥>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가로되 사랑이더라
(고은·시인)
<밥, 그 밥 한 그릇의 사랑이여 용서여>
여보야
밥 안 먹었지
이리 와서 밥 같이 먹자
김이 난다 식기 전에 얼른 와서
밥 같이 나눠먹자
마주 보면서 밥 같이 나눠 먹으면
눈빛만 보고도
지난 오십 년 동안 침전된 미운 앙금은
봄눈 녹듯이 녹아 내릴 것 같애
우리 서로 용서가 될 것 같애
여보야
밥 안 먹었지
이리 와서 밥 같이 먹자
밥, 그 한 그릇의 사랑이여 용서여(이선관·시인)
晩餐(만찬)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함민복·시인)
<국밥집에서>
허름한 국밥집에서
국밥 한 그릇 먹다보면
그래도 사는 게 뜨끈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장난 시계와 삐걱거리는 의자와
비스듬히 걸린 액자가 다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뜨거운 국밥 한 숟갈 목젖을 데워오면
시린 사랑의 기억마저 따뜻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로움도 쓸쓸함도 다 엄살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자리 모여 앉아 제각각의 모습으로 국밥을 먹는 사람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낯이 익었다는 생각이 든다
소주 한 잔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국밥집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구겨진 날들이 따뜻하게 펴지고 있다(박승우·시인)
<쌀노래 >
나는 듣고 있네.
내 안에 들어와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는
한 톨의 쌀의 노래
그가 춤추는 소리를쌀의 고운 웃음
가득히 흔들리는
우리의 겸허한 들판은
꿈에서도 잊을 수 없네하얀 쌀을 씻어
밥을 안치는 엄마의 마음으로
날마다 새롭게
희망을 안쳐야지적은 양의 쌀이 불어
많은 양의 밥이 되듯
적은 분량의 사랑으로도
나눌수록 넘쳐나는 사랑의 기쁨갈수록 살기 힘들어도
절망하지 말아야지
밥을 뜸들이는
기다림으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희망으로
내일의 식탁을 준비해야지(이해인·수녀)
인문학이 밥 먹여주진 못하지만 밥을 맛있게 해 줄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상기 시켜주는 것들을 우리 주위에 두고 자주 꺼내보면 어떨까 한다.
그렇게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않는 한해가 되길 바라며.